● 목적지 - 취몽헌 오태주 묘역
● 경기도 기념물 186호
● 누구랑 - FT90 . UV3R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대촌길 12-3 (사사동)
명안공주(明安公主.1667.현종 8~1687.숙종 13)
명안공주의 유적지를 찿아가는길은 무척 힘들었다. 이정표도 없고 대략적인 위치만 나와있어 발품을 팔기로 작정합니다
동네길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 나즈막한 야산위로 나있는 골목길을 올라가니 소로가 나옵니다.
소로를 따라 올라가니 취몽헌 오태주의 묘역이라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조선의 왕족으로 현종의 셋째딸이며. 명성왕후 소생으로 위로 두 언니가 모두 일찍 죽었기에 현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1679년(숙종 5) 서인의 핵심 인물인 오두인의 아들 오태주(吳泰周)와 정혼하여 이듬해인 1680년(숙종 6) 12월 18일, 하가하였다.
당시 가뭄이 극심하였는데 명안공주의 살림집을 성대하게 지어 송시열 등이 규모와 비용을 줄이라고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명안공주는 아들 오원(吳瑗)을 낳고 1687년 5월 16일에 훙서하였다.
명안공주 묘역
명안공주와의 결혼으로 해창위(海昌尉)에 봉해 봉해진 남편 오태주는 1689년 시아버지 오두인이 인현왕후 폐위와 관련해 올린
상소 사건으로 멸문지화를 입을 뻔 하였으나 숙종의 여동생의 시가이기에 멸문의 화를 피할 수 있었고 삭탈됐던 오태주의 작위
도 다음 달에 특별히 복작되었다. 오태주는 1716년에 졸하였다.
취몽헌 오태주 묘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대촌길 12-3 (사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오태주의 묘역. 취몽헌 오태주 묘역은 문신이자 서예가인
오태주와 그의 부인 명안공주(明安公主)를 합장한 유택이다.
오태주는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도장(道長), 호는 취몽헌(醉夢軒)이다.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의 3남이며, 어머니는 상주 황
씨이다. 1679년(숙종 5) 현종의 셋째 딸인 명안공주와 혼인하여 해창위(海昌尉)에 봉해졌고, 명덕대부(明德大夫)의 위계를 받았
다. 이어 광덕대부(光德大夫)에 올랐고 오위도총부도총관, 조지서(造紙署)와 귀후서제조(歸厚署提調) 등을 지냈다.
취몽헌 오태주 묘역은 명안공주와 오태주의 어머니인 상주황씨, 해창위 오태주, 그리고 아들인 오원(吳瑗)의 묘가 열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다.
묘역은 서남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작은 구릉의 끝부분 능선을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능선의 자락이 끝나는 부분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에서 동북쪽 약 50m 떨어진 곳에 재실(齋室)이 남아 있었는데, 이 재실은 1997년 6월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되었다.
명안공주어제치제문비(明安公主御製致祭文碑)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명안공주와 부마 오태주의 어제치제문비. 명안공주어제치제문비(明安公主御
製致祭文碑)는 숙종의 누이 명안공주와 부마 오태주의 죽음을 애도하며 내린 어제치제문을 새겨 놓은 비석이다.
숙종의 누이가 되는 명안공주(明安公主)는 현종과 김우명(金佑明)의 딸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명안공주에게는 두 명의 언니가 있었으나 이들이 모두 일찍 죽자, 명안공주가 현종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명안공주는 1679년(숙종 5) 판서 오두인(吳斗寅)의 아들인 오태주(吳泰周)와 혼인하였다.
명안공주 관련 유물로는 이밖에도 각종 고문서 등이 강원도 강릉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명안공주와 오태주 사후 숙종이 어제치제문을 내렸는데, 이 묘비는 오태주의 묘갈이 세워지는 1720년(숙종 46)경 치제문을 비석
에 새겨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의 전면에 1716년 숙종이 내관 장세상(張世相)을 보내 오태주를 애도한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681년 여관(女官)을 보내 명안공주를 애도한 글이 새겨져 있다. 전면에서 숙종은,
“어머니 명성왕후가 당시 부마를 맞아들일 때 그의 나이는 어리지만 일찍이 지각이 트이고 학업의 성취됨을 보고 부마로 잘 골라
뽑으셨는데, 지닌 재주와 뜻을 다 펴지도 못하고 50세도 되지 않아 혼연히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까운 심정 눈물만 흐른다.” 고 애
도했다. 뒷면의 명안공주에 대한 치제문에서는,
“언니 명선과 명혜가 잇달아 죽음에 엄청난 슬픔을 가누지 못했는데, 이제 배필을 만나는 예를 올려서 화락한 금슬을 이루고 장
수를 누릴 것을 기약했는데, 하루아침에 이와 같은 기별을 듣다니~ 유유한 나의 정으로 그대를 일찍 영결하려니 소리쳐도 응함
이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거늘, 저 푸른 것이 하늘인데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환하고 밝은 세상을 버리고 저 어둡
고 캄캄한 세상을 향해 가니, 천장지구토록 이 애통한 심정 감내하기 어렵다.” 라며 죽음에 대해 애도하고 있다.
■ 오태주와 명안공주 묘는 단분(單墳) 부부 합장묘로 봉분의 직경이 800㎝이고, 높이는 155㎝이다.
묘의 아랫단에 상석과의 사이에 1단의 지대석을 심어 두었다. 묘를 향하여 오른쪽에 묘비가 있고 왼쪽에는 숙종이 지은 제문비가
있다.
중심에는 상석이 네 귀에 북 모양의 받침을 하고 놓여 있고, 그 전면에는 사각의 장명등이 있다.
장명등과 비슷한 위치에 묘의 양측으로 문인석이 하나씩 서 있다. 장명등과 문인석, 망주석은 장식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취몽헌 오태주 묘역의 묘갈은 1688년(숙종 14) 세워졌으며 1720년(숙종 46)에 세운 어제치제문(御製致祭文)의 비문은 김창흡
(金昌翕)이 찬했다.
묘비는 사각인데 사면에 해태가 조각되어 있고, 전면과 후면에는 해태 두 마리가 대칭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측면에는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가면서 인동초로 장식하였다. 비개석은 사각 맞배지붕 모양을 하고 있는데 별다른 장식 없이 지붕 모양만 만
들었다.
숙종어제치제문비는 숙종이 명안공주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제문과 오태주가 죽었을 때 지은 제문을 새긴 비석으로,
크기가 110×49×19㎝이며 지대석은 88×57×30㎝이다. 비석은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원두로 개석이 없는데 방석기단 위에 있다.
대리석이어서 마모가 심하여 일부의 글씨는 읽을 수 없는데,
그 내용은 대략 명성왕후의 셋째인 명안공주가 두 언니들처럼 일찍 죽어서 슬프다는 내용이며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것이
다.
2003년 4월 21일 경기도 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취몽헌 오태주 묘역은 해주오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명안공주의 유품은 해주오씨 문중에서 관리하다가 강릉시립박물관에서 관리되고 있다. 1995년 45점의 유물들이 보물 제1220호
로 지정되었다.
취몽헌 오태주 묘역에 있는 명안공주의 묘막 건물은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DE HL2WJA BEST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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